“민주당 당 대표라는 역사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다. 당연히 그런 ‘로망’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신임 대표는 올 1월 이렇게 말하며 민주당 당 대표에 대한 꿈을 내비쳤다. ‘86 운동권 그룹의 선두 주자’로 화려하게 정치권에 입성했지만 18년간 국회 밖을 맴돌았던 김 대표는 8·17 전당대회로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되며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끝에 당권을 손에 쥐었다.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뒤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학생총연합 의장을 맡으며 학생운동권의 대표 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미국 문화원 。거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1988년까지 수감생활을 했고, 1990년 ‘꼬마민주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원 속에 1992년 14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공천을 받으며 ‘학생운동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모바일 온라인 바다이야기 게임
첫 총선에선 낙선했지만 1996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돼 15대 국회 최연소 의원이 됐다. 2000년 16대 총선에선 당시 서울 최고 득표율(60.4%)로 재선에 성공했고, 2002년 지방선거에선 민주당 역대 최연소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되면서 민주당 차기 주자로 부상했다.
하지만 서울시장 본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패배한 후 정치적 변곡.을 맞이했다. 대선을 앞둔 2002년 10월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 후보가 이끌던 국민통합21에 합류한 것. 정 후보가 선거일 하루 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우여곡절 속에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됐고, 김 대표에겐 한동안 ‘배신자’란 낙인이 찍혔다. 이후 17·18대 총선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고, 2005년엔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으로 한동안 정치권을 떠나야 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PC버전
중국 칭화대 법학 석사, 미국 럿거스뉴저지주립대 로스쿨 법학 박사 등 학업을 이어가며 절치부심하던 김 대표는 2016년 당시 원외 정당이었던 민주당을 이끌다가 더불어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친정에 돌아왔다.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 공천을 받아 당선되면서 18년 만에 원내로 복귀했다. 그는 지난달 20일 합동연설회에서 “젊은 시절의 실수와 오판을 반성하고 근 20년 야인생활의 광야를 지나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2022년 이재명 대통령 대선 캠프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본부장을 맡아 대선 전략을 총괄했다. 이후 김 대표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정책위의장과 22대 총선 상황실장 등을 지냈고, 2024년 전당대회에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며 친명(친이재명)계 핵심으로 부상했다. 같은 해 8월 최고위원회의에선 공개적으로 비상계엄 가능성을 제기했고, 4개월 후 현실화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김 대표는 초대 국무총리를 맡아 약 1년간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맡았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지난달 6일 ‘당정 일치’를 앞세워 당 대표 출마를 선언했고 결국 당권을 거머쥐게 됐다.
8·17 전당대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