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며칠 한국 안보 뉴스를 보고 있으면 종잡기 어렵다. 한미연합훈련이 갑자기 절반으로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자신의 접촉 시도에 응답했고 상황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임기 안에 돌려받겠다고 했다. 거기에 한국이 이란 문제에서 미국을 돕지 않아 트럼프가 화가 났다는 이야기까지 붙었다.
이것들이 서로 연결된 일인가. 일부는 연결돼 있고 일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것들을 한데 섞어놓고 있다.지금 혼란의 상당 부분은 여기에서 생긴다.
이유가 먼저였나, 결정이 먼저였나
지난 16일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줄이라고 지시하면서 훈련 비용이 많이 든다는 ., 자신과 김정은의 관계가 좋다는 ., 이런 훈련이 북한에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는 .을 이유로 들었다.
기자들을 만난 이 자리에서 한국 대통령에게 이란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더니 "아니오. 사양하겠다(No, thanks)"라는 답을 들었다는 불만도 꺼냈다. 이때만 해도 자신이 '다소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에는 한국에 미군을 두고 김정은으로부터 지켜주는데 한국은 이란에서 미국을 돕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국을 돕느냐"고 했다. 전날 자신도 관련 없다고 했던 일이 하루 만에 한미 안보 관계를 설명하는 논거가 됐다.
이런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청소년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듣던 변명의 방식이 떠오른다.
"너 어제 왜 약속에 안 왔어?"라고 물었더니 "피곤하기도 했고, 네가 한 말에 화도 났고, 공부할 것도 많고, 날씨도 안 좋았잖아"라고 답하는 경우다. 이유는 여러 개인데 듣고 나면 정작 왜 약속에 안 갔는지는 더 알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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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하나가 진짜 이유일 수도 있고, 이미 약속을 어긴 뒤 그 순간 떠오르는 불만과 사정을 하나씩 이유로 갖다 붙인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설명도 닮았다. 훈련 비용, 김정은과의 개인적 관계, 북한에 보내는 신호, 한국의 이란 전쟁 불참은 같은 층위의 문제가 아니다. 이유가 있어서 결정을 내린 것인지, 결정을 먼저 내려놓고 뒤에 이유를 계속 붙이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국가의 군사훈련을 줄이는 결정이라면 안보 환경이 어떻게 변했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전략적 판단과 개인적 친분, 비용에 대한 불만과 다른 지역에서 생긴 서운함이 한 줄에 놓인다. 어딘가 미성숙한 변명 방식을 연상시킨다. 문제는 이것이 친구와의 약속을 설명하는 장면이 아니라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한반도의 군사태세를 바꾼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라는 데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정리되지 않은 설명이 말로 끝나지 않았다는 .이다. 17일부터 27일까지 예정됐던 '을지 자유의 방패'(UFS)는 21일 끝나 5일로 줄었다. 예정됐던 14차례의 연합 야외 기동훈련도 7건만 예정대로 실시하고, 나머지 7건은 조정하기로 했다.
이것은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효용성이나 적절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훈련은 필요에 따라 줄일 수도 있고 중단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중대한 군사적 결정일수록 충분한 검토와 동맹 간 조율, 일관된 전략적 설명을 거쳐야 한다는 데 있다.
국가안보에서 힘만큼 중요한 것이 예측 가능성과 신뢰다. 대통령의 즉흥적으로 보이는 발언이 며칠 만에 군사적 현실로 이어진다면, 동맹도 상대국도 미국의 다음 결정을 정책의 원칙보다 대통령 개인의 기분과 말에서 먼저 읽으려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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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트럼프의 말을 '늘 저러는 사람의 과장'이라고 흘려들을 수도 없다. 정리되지 않은 말이 때로 며칠 만에 현실이 된다.
북미대화와 전작권은 따로 봐야
▲ 유사시 한반도 방어를 위한 정례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이 조기 종료되는 21일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치누크 헬기와 아파치 헬기가 대기하고 있다. 지난 17일 시작된 UFS 연습은 당초 27일까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소 지시에 따라 훈련 기간이 11일에서 5일로 크게 줄었다.
북미대화도 그렇다. 트럼프는 17일 김정은이 자신의 접촉 시도에 "답했다"고 했고 상황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틀 뒤 김여정은 최근 북미 정상 간 소통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다음 날 북한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약 10발을 발사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여기까지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고 싶어 한다. 김정은이 만나기로 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그 이상은 추측이다.
전작권 역시 이번 훈련 축소와 한 덩어리로 볼 일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미 2030년 임기 안 전환을 추진해 왔고, 군 당국에 따르면 이번 UFS에서 예정됐던 전작권 전환 관련 한미 공동 평가도 17~18일 완료됐다.
전작권은 트럼프가 한국에 주거나 말거나 할 선물이 아니다. 한미가 합의한 조건에 따라 한국군 주도의 연합 지휘 체제로 전환하는 별도의 과정이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트럼프가 한국과의 안보 관계를 다른 거래의 지렛대로 사용한다는 。이다.
이란에서 미국이 원하는 만큼 한국이 돕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왜 한국을 돕느냐고 한다. 김정은과 자신은 잘 지낸다. 그래서 한미 군사훈련을 줄인다. 트럼프의 논리다. 한마디로 동맹의 안보 공약과 군사태세가 대통령 개인의 불만이나 다른 협상의 결제 수단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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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근본적으로 묻자. 한국이 왜 트럼프가 이스라엘과 함께 시작한 이란 전쟁에 당연히 뛰어들어야 하나.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봉쇄 상태에 빠졌고 출구도 선명하지 않다. 트럼프는 동맹에 "왜 우리를 돕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기 전에 왜 이 전쟁을 시작했고 무엇을 얻었는지부터 설명할 책임이 있다.
자신이 벌인 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왜 너희를 지켜주느냐"고 묻는 것은 동맹의 의무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안보 공약을 전혀 격이 맞지 않는 보복과 흥정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보다 더 위험하다
최근 미국의 정치전문매체인 <악시오스>는 2월 말부터 8월 19일까지 트럼프가 이란이나 호르무즈를 언급한 소셜미디어 글 269개와 국제유가의 움직임을 비교했다. 처음에는 시장이 움직였지만 갈수록 반응이 줄었다. 시장도 트럼프의 말을 '할인'하기 시작한 셈이다.
트럼프의 말은 양치기 소년보다 더 심각하다. 그에게는 양뿐 아니라 양의 주인과 마을 주민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힘이 있다. 그의 말 가운데는 허풍으로 끝나는 것도 있지만, 실행에 옮겨서는 안 될 무모한 일까지 실제 행동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국제정치에서 트럼프의 말을 단순한 말실수나 허풍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미국 대통령의 경고가 반복해서 할인되기 시작하면, 정작 진짜 경고를 보내야 할 순간에도 상대는 먼저 '이번에도 허풍 아닌가'를 계산하게 된다.
반대로 동맹국은 그의 말 한마디가 언제 실제 정책이나 행동으로 옮겨질지 계산해야 한다. 적도 동맹도 미국 대통령의 말 자체보다 그 말의 진위를 먼저 판별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양치기 소년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 데 있지 않았다. 마을의 경보 체계 자체를 망가뜨렸다는 데 있었다. 트럼프는 거기에 더해, 자신이 울린 거짓 경보를 실제 재난으로 바꿔버릴 권력까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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