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는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간의 긴 여정을 보여준다. 이타카는 분명한 목적지지만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보여주는 것은 목적지에 닿는 순간보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견뎌낸 시간과 과정의 중요성이다. 수많은 시련과 실패를 겪고 다시 길을 찾아 나서며 그의 여정은 완성되어 간다.
혁신의 여정도 다르지 않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기술과 제품을 거쳐 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는다. 혁신 깔대기 이론에 따르면 3000개의 아이디어 중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고작 하나다. 혁신에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 금융은 기다리기 어렵다.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같은 딥테크 기업은 언제 연구개발을 끝낼지도, 시장에서 성공할지도 불확실하다. 담보와 당장의 매출을 중시하는 금융의 눈으로 보면 고위험 기업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기업들 가운데 미래의 파괴적 혁신을 주도할 기업이 탄생한다.
혁신기업에는 기술이 시장에서 꽃필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는 자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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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추진하는 차세대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등 3대 메가 프로젝트에는 향후 10년간 1500조 원이 넘는 투자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대기업의 투자만으로 AI 혁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혁신은 기업 간 협력과 연결로 이루어진 에코시스템을 통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전력·냉각, 로봇·센서, 데이터·소프트웨어 등 기술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대규모 투자가 산업 전반의 혁신으로 확산할 수 있다.
기술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여정은 가시밭길이다. 어렵게 기술 개발에 성공해도 단가와 품질을 맞추고 고객을 찾는 사업화의 관문이 기다린다. 최근 국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1.0%로 1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융기관의 위험관리가 강화될수록 기술중소기업의 ‘죽음의 계곡’은 깊어진다. 그렇게 혁신 없는 ‘다산다사(多産多死)’형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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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명의 낙수효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혁신의 물길을 설계해야 한다.
여기서 기술평가 기반 정책보증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재무제표와 담보에서 기술과 사람의 가능성으로 평가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공공금융이 기술중소기업에 불확실성과 위험을 견딜 시간과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금융이 만든 물길을 따라 민간자금도 기술혁신으로 흘러갈 수 있다. 기술보증기금과 같은 공적 금융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정책보증 재원 확충도 같은 관。에서 봐야 한다. 국가전략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면 산업혁신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술중소기업의 금융 인프라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공공금융이 기술평가와 정책보증을 통해 마중물 역할을 하고 민간자금을 연결한다면 더 많은 혁신기업의 도전을 뒷받침할 수 있다.
AI 혁명 시대, 대한민국의 새로운 오디세이는 이미 시작됐다. 오디세우스가 시련을 극복하는 여정의 시간, 그리고 이타카 사람들의 기다림의 시간. 오늘날의 대한민국에도 기술중소기업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혁신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금융이 필요하다. AI 혁명이 가속화되는 오늘이야말로 어느 때보다 ‘오디세이의 금융’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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