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가명, 여)씨와 이무영(가명, 남)씨는 교제관계였습니다. 김씨는 2019년부터 경찰에 31회 교제폭력 피해를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11일, 이씨는 사망했습니다. 김씨가 불을 질렀습니다. 도화선, 한자로 풀이하면 불을 이끄는 줄이란 뜻입니다. 불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게 공권력의 역할입니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을까". 항소심 김씨 대리인 이한선 변호사의 질문입니다.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21대 국회가 개원 중이던 2020년과 2024년 사이, 적어도 다섯 건의 교제폭력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가정폭력처벌특례법, 교제폭력처벌특례법 등 이름은 달랐지만 지향.은 같았다. 교제폭력 범죄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법안들은 모두 폐기됐다. 입법 공백 속에 31번(2019년 포함)의 구조신호를 보낸 여성이 있다. 김희원(가명, 여)씨다.
2019년 7월 첫 신고 후 2024년 5월까지 김씨는 교제폭력 피해를 31번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2024년 5월 11일 김씨는 불을 질렀다. 이 불로 사망한 사람은 남자친구 이무영(가명, 남)씨였다. 교제폭력 피해자였다가 현주건조물방화치사 가해자가 된 김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31번의 신고, 2번의 입원, 3번의 교제폭력 관련 재판을 거치는 동안 공권력은 분명히 김씨가 겪은 교제폭력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씨를 폭력에서 구하지 못했다. 이 사건엔 분명한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 군산 교제폭력 방화치사 사건에는 분명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 권우성
사건의 비극과 그 배경에 놓인 구조적 문제를 알아챈 이들이 모여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를 출범시켰다. 공대위에서 활동 중인 연대자D, 한솔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광주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 박진숙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난 7월 28일 만났다. 이들과 이 사건에서 드러난 사각지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가는 피해자를 31번 몰아세웠다"
세 사람은 31번 신고가 반복되는 동안 경찰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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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숙 :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할 기회를 31번 줬는데 국가는 31번 피해자를 몰아세운 거다."
연대자D : "신고가 반복됐기 때문에 위험하구나로 인지했다기 보다는 '죽지는 않겠지' 정도로 생각했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사건 발생 후 진행되는 '사후 모니터링'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연대자D : "이씨가 김씨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로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 것만 세 차례다.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건 모니터링을 했다면 알 수 있을 지。이다."
한솔 : "관계성 폭력에서 피해자가 '화해했어요, 괜찮아요' 하면 (경찰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우리도 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옆에 가해자가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대응하는 게 정말로 했어야 할 일 아닌가."
'교제폭력 관련법이 없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경찰 내부의 목소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국회와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솔 : "(교제폭력 관련한) 입법이 우선 돼야 한다. 수사기관의 '지침 없으면 못 움직인다'는 변명 거리를 (법의 공백이) 만들어주고 있다."
박진숙 : "(교제폭력 관련법) 발의 그 다음 단계를 안 밟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정말 묻고 싶다. 여성폭력과 교제폭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이 같은 구조 속에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뀌었다. 사건이 발생한 2024년, 22대 국회가 문을 열었다. 이후 2026년 7월 현재까지 발의된 교제폭력 처벌 관련 법안만 16건이다. 그러나 모두 계류 중으로, 입법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여전한 공백 속, 또 다른 사각지대의 도화선에 불이 붙고 있을지 모른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 관련 112신고는 총 10만 5327건에 달했다.
다음은 연대자D, 한솔 활동가, 박진숙 위원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31번 신고기록, 피해자가 자기 생명을 걸고 구조요청한 것"
▲ 교제폭력과 관련한 기록들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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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 김씨 사건의 경우, 관련 증거자료만 수백 건에 달한다. 그 자료들 중 반복되는 교제폭력의 문제。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록은 무엇이라고 보나.
한솔 : "(이씨가 가한 교제폭력) 판결문을 보면, 김씨와의 관계와 서사에 대한 집중보다 폭행·상해 등 행위로만 기록돼있다. 2023년 10월 재판부는 특수상해·상해·폭행 등 죄명을 다 합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는데, 그게 이 사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교제폭력 피해는 단순 행위들로만 집중했을 때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진숙 : "31건의 신고기록이 가장 핵심적인 지. 아닐까. 입법적 노력, 판결 다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경찰의 초동 대응이 사건의 향방을 좌지우지하지 않나. '31'은 초동대응이 안됐다는 ., 그리고 피해자가 포기하지 않고 그만큼의 보복 위협을 감내했다는 .을 드러낸다. 단순한 대응 실패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 생명을 걸고 구조요청을 했다고 해석해야 한다. 피해자는 국가가 나를 보호할 기회를 31번 줬는데 국가는 31번 피해자를 몰아세운 거다."
연대자D : "(교제폭력 문제。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기록은) 방화치사 사건 1심 증거 목록이다. 5년간 교제폭력을 당했다는 기록은 살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근거로만 쓰였다. 당초 증거 목록에는 (이씨가 김씨에게 가한 교제폭력에 대한 재판 가운데) 2023년 사건만 들어가 있었다. 2022년 두 건의 사건이 더 있었는데 증거 목록에도 없었던 거다. 퇴거불응만 두 차례다. 자신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안전을 보장 받지 못했고, 이후 법적 처벌이 세 번 반복됐다. 국가와 지역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 연대자 D
- 반복적으로 목숨을 걸고 신고를 했다는 건, 사실 그만큼 '보호받지 못한다'는 경험이 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진숙 : "(교제폭력을 당하는 동안) 김씨는 주거이동이 없었다. 한 지역에서 계속 살면서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위험한 상황에 처했는데 언제든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신고한다는 건 위협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다. 일반 시민은 몸으로 아는 진실을 경찰은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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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극이 의아하다."
연대자D : "(이씨의 교제폭력에 대해) 유사한 다른 사례와 비교해 봐도 재판부는 실형 선고를 통해 강하게 처벌했다고 본다. 그런데 수사기관이 사안의 심각성을 크게 봤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복적 신고를 하게 만든 상황은 수사기관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31번이라는 신고 횟수는) 신고가 반복됐기 때문에 위험하구나로 인지했다기 보다는 '죽지는 않겠지' 정도로 생각했을 거라는 추정을 하게 한다."
한솔 : "(내가 속한) 광주 지역만 그런지 몰라도, 가정폭력을 담당하는 경찰은 가장 신입이다. 가장 사건이 많고,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 구조에 녹아져 있는 거 같다."
"'지침 없어 못 움직인다'는 수사기관의 변명거리, 법 공백이 만들어주고 있어"
- 경찰이 용혜인 의원실에 제출한 질답서를 보면 2023년부터 김씨에 대한 사후모니터링이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
연대자D : "이 사안이 실제적으로 모니터링이 됐다면 '사후 모니터링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되지 않나. 이씨가 김씨를 상대로 저지른 범죄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만 세 차례다. 상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는 건 모니터링을 했다면 알 수 있을 지.이다. 모니터링이 실효성 있게 이뤄졌다면 2024년 만기 출소를 앞뒀을 때 피해자에게 출소 상황을 알리고 순찰을 강화하고 대책을 마련했어야지.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기관 연계를 했어야 했다."
한솔 : "(모니터링을 위해) 피해자 등급을 나눈 후 여성의전화와 같은 기관 협업이 되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이 이어지면 좋을 텐데, 군산은 사실 그런 협업이 전혀 안 되고 있다. 사후 모니터링에 대한 기록도 자신의 실적이기 때문에 자세히 적어야 할 텐데, 과연 김씨를 직접 만나서 모니터링을 시행했을지는 의문이다. 관계성 폭력에서 피해자가 '화해했어요, 괜찮아요' 하면 어쩔 수 없다는 건 우리도 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 옆에 가해자가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고 대응하는 게 정말로 했어야 할 일 아닐까."
▲ 2026년 7월 28일 여성의당과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31번 신고해도 막지 못한 교제폭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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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 참석한 박진숙 여성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
ⓒ 이진민
박진숙 : "모니터링 대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다. 피해자에게 전화를 한다는 건 결국 피해자를 통제하는 거다. 가해자를 왜 모니터링 하지 않나. 오히려 가해자에게 전화를 했다면, 이 사건을 수사기관이 주시하고 있었다는 메시지를 줬을 수 있다."
- 이런 사건이 또 발생하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뭐라고 보나.
연대자D : "경찰 내부에서 감수성을 기르는 부분에 대해 등한시 하고 있는 거 같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었을 때 주저하지 말고 신고·고소 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일이 발생한 후 대처는 당연하지만 사건 예방도 경찰의 몫이다. '규정이 없다, 법이 없다'라고 얘기하는 거 자체가 무책임하다. '없으니 이렇게 적용해 진행하겠다'고 해야 믿을 수 있지 않겠나."
한솔 : "입법이 우선돼야 한다. 수사기관의 '지침 없으면 못 움직인다'는 변명 거리를 (법의 공백이) 만들어준다. 지역 경찰청에 여성 과장님이 오셨다. 원래도 피해자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는데 그 분이 오자마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걸 보면서 '위가 바뀌면 아래도 바뀌는 구나' 느꼈다. 일선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기 어렵다면 윗선을 공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 2026년 7월 28일 여성의당과 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에서 '31번 신고해도 막지 못한 교제폭력,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현장에 참석한 한솔 광주여성의전화 부설 광주여성인권상담소 활동가의 모습.
ⓒ 이진민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김씨가 돌아왔을 때, 살아갈 수 있는 환경 만들어 주려 한다"
- 2016년 데이트폭력 처벌법이 처음 발의되고 이미 10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관련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그 10년의 세월이 드러내는 바는 무엇이라고 보나.
연대자D : "입법은 현장 일선을 움직이게 하는 요건이다. 법만으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아니라 '지침이 없어요'라 얘기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거다. '규정이 없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으로 인해 여성 피해자의 생명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회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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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관련 법이 통과 되지 않았다는 건, 여성은 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여성을 이미 확보한 표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박진숙 : "경찰청 윗선을 바꾸는 일도 결국은 정부와 국회가 압박해야 움직일 수 있다. 10년의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국회로 향할 수밖에 없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법안들을 보면 도리어 힘이 빠진다. 하나의 교제폭력 관련법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해자의 고통이 있었을까. 그런데 정작 피로 쓴 법안의 입법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나를 생각하면 처참하다. 발의는 첫 걸음에 불과하다. 그 다음 단계를 안 밟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정말 묻고 싶다. 입법도 정부가 리드해줘야 한다. 여성폭력과 교제폭력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다."
▲ 2025년 8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교제폭력 범죄 관련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 암담함에도 불구하고, 공대위는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활동을 추진할 계획인가.
박진숙 : "8월 4일, 대통령실 앞에서 김씨에 대한 특별사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작년 특별사면도 정·재계 인사 위주로 이뤄지면서 '민생 사면'이라고 내걸었다. 이번 8·15 특사 때 김씨를 대상자로 검토할지... 국가가 보호하지 못한, 구해내지 못한 피해자에 대해 적어도 특사 검토를 해야 한다고 본다."
연대자D : "(김씨) 재판이 끝났는데도 공대위 활동은 계속되고 있다. 그가 세상에 나왔을 때, 교도소 앞에 가고 싶어서다. 한 손에 두부 들고, (김씨가 하고 싶다던) 네일아트 재료, 책을 들고 갈 거다. 특별사면 가능성이 높지 않더라도 이를 요구하는 건, 살아있는 여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 노력했던 이 여성이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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