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가명, 여)씨와 이무영(가명, 남)씨는 교제관계였습니다. 김씨는 2019년부터 경찰에 31회 교제폭력 피해를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11일, 이씨는 사망했습니다. 김씨가 불을 질렀습니다. 도화선, 한자로 풀이하면 불을 이끄는 줄이란 뜻입니다. 불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는 게 공권력의 역할입니다. "교제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때까지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을까". 항소심 김씨 대리인 이한선 변호사의 질문입니다. 그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법원에 제출된 교제폭력 사건 기록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 측으로부터 받은 신고기록에 따르면, 김희원(가명)씨는 남자친구를 교제폭력으로 31회 신고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 특별기획 '교제살인' 일러스트
ⓒ 이강훈
"살려주세요."
2022년 6월 11일, 한 여성이 경찰에 문자를 보냈다. 다음 날에는 신고 전화를 했다. 두 번 모두 남자친구의 폭행 때문이었다. 경찰은 신고 이후 두 차례 사후콜백(6월 14일, 6월 16일)을 했다. 전화받은 여성은 "남성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의 추가 조치는 없었다. 사건 현장에서는 분리 귀가조치를 했다. 이 여성은 김희원(가명)씨. 당시 김씨는 이미 경찰에 13번 신고했고, 두 차례 병원에 입원한 교제폭력 피해자였다.
경찰의 마지막 전화로부터 나흘 뒤인 6월 20일, 김씨는 다시 112에 신고했다. 피해 사실도 구제척으로 알렸다.
"상대방이 목 조르는 행위 / 조금 전에 남친이 그랬다."
김씨가 경험한 '목조름'은 교제폭력 상황에서 피해자 살해 위험을 높이는 전조 신호로 꼽힌다.
사이다릴게임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5월 발간한 보고서 <친밀한 파트너 살인을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에서 목조름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그렇지 않은 피해자보다 살해당할 위험이 약 7.5배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다시 사후콜백(6월 21일)을 했다. 김씨는 "어제 신고한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폭행을 당하지 않았고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경찰은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23년 3월 12일, 김씨는 "만나는 사람에게 좀 전에 맞았다"고 신고했다. 당시는 이씨가 출소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경찰은 "김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기재했다. 이날 이후 김씨는 모니터링 A등급 대상자가 됐지만, 경찰의 대응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사후모니터링은 사후콜백으로 대체."
또 '사후' 전화였다.
"가해자의 철저한 통제… 처벌불원? 자유로운 선택 아냐"
▲ 2023년 3월 12일, 김씨는 "만나는 사람에게 좀 전에 맞았다"고 신고했다. 당시는 이씨가 출소한 지 일주일째였다. 경찰은 "김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기재했다. 이날 이후 김씨는 모니터링 A등급 대상자가 됐지만, 경찰의 대응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 권우성
전문가들은 김씨의 처벌불원 의사가 "보복에 대한 두려움, 장기간 학대로 인한 무기력, 가해자의 회유·협박 속에 이뤄진 선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해 "피해자가 처벌불원을 요구했다고 수사·사법기관의 역할이 멈추는 것은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김씨의 반복된 112 신고 자체를 고위험 신호로 읽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다빈치 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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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국선변호인이었던 이한선 법무법인 와이앤비 대표변호사는 지난 7월 28일 열린 '31번 신고해도 막지 못하는 교제폭력,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친밀한 관계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거, 연락처, 가족관계, 약. 등을 알고 있어 처벌불원 의사를 받아내는 것이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장기간 학대를 경험한 피해자는 학습된 무기력과 정서적 종속으로 가해자와의 관계를 끊을 힘을 잃어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교제폭력의 다수를 차지하는 폭행죄와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면 국가 형벌권이 작동을 멈춘다"고 비판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가해자의 회유·협박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속에 이뤄진 피해자 의사를 자유로운 선택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제도는 피해자가 계속 신고해도 처벌불원 의사를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의 위험성을 축소한다"며 "반복 신고라는 고위험 신호를 읽지 못한 채 판단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은 해외 수사 가이드라인에서도 확인된다. 국제경찰서장연합(ICAP)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친밀한 관계 폭력 대응 정책 및 교육 가이드라인'은 "피해자가 신고를 번복한다고 해서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며 "수사 참여를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불기소 의사서(non-prosecution statement)에 서명하도록 요구해서는 안 되며 객관적인 범죄 정황이 확인될 경우에는 사건의 후속 조치를 결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모바일신천지
한편 지난해 9월 열린 토론회 '교제폭력 대응 쟁.과 정책 과제'에 따르면 2025년 교제폭력 관련 112 신고 접수된 사건(총 1129건) 가운데 신고처리·수사진행 단계에서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혀 종결된 비율은 50.6%였다.
보호조치 없던 이유, "결혼한 사이 아니라서"
▲ 2024년 5월 11일 새벽, 김희원(가명)씨는 전 연인이자 교제폭력 가해자인 이무영(가명)의 집에 불을 내 그를 숨지게 했다. 2025년 4월, 2심 재판부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 이진민
경찰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제출한 <김OO 신고이력 조치 관련 질답서>에는 "김씨와 이씨가 가정폭력처벌법 조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가정폭력처벌법상 피해자 보호조치(보호명령·상담위탁)와 가해자 임시조치(퇴거·접근금지·유치 등)는 배우자나 사실혼 관계에만 적용됐다. 연인 관계인 김씨와 이씨는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이 변호사는 "김씨와 이씨는 약 5년간 교제하며 상대방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지만, 법적으로 가정폭력처벌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며 "김씨가 31차례나 신고했음에도 가정폭력처벌법상 보호조치나 임시조치가 검토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가 경험한 폭력의 정도는 일반적인 가정폭력 사건과 다르지 않았으나, 보호 수준은 달랐다"며 "연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법적 공백이 발생한 것"이라고 짚었다.
김씨의 처벌불원 앞에서 경찰 수사는 멈췄다. 연인 관계라는 이유로 법적 보호는 닿지 않았다. 그렇게 김씨의 신고만 반복됐다.
[도화선 ①] 31번의 구조 신호, '앙심' 두 글자로 요약한 재판부 https://omn.kr/2j8y8
[도화선 ②] 형사·검사·판사도 끊지 못한 '도화선'... 그는 어떻게 피고인이 됐나 https://omn.kr/2j8ri
[도화선 ③] 폐에 구멍이 나도록 맞은 그는 '모니터링 대상 X'였다 https://omn.kr/2j8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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