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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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맹랑 여대생의 진짜탁구선수 되기

핑퐁코리아 0 941 2019.10.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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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3학년 양혜림 씨.  

# 17학번, 만 22살의 한국체대 사회체육학과 여대생, 양혜림. 중학교 때 피구로 서울시대표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좋았고, 이것이 계기가 돼 ‘체육선생님’의 꿈을 안고 재수 끝에 ‘체대생’이 됐다. 체육 전공의 지극히 평범한 여대생이다.

# 탁구? 고등학교 체육수업 중간고사 때 서브넣기를 하다가 마음과는 달리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탁구공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친구따라 한국체대 탁구동아리에 들어간 게 나중에 닥칠 큰 인연의 계기가 됐다. 어쨌든 실력은 생활체육 지역 7부도 안 되는 초보자. 대학생활 중간중간 ‘똑딱이 탁구’를 즐기는 게 낙이었다.

# 그러던 2019년 1월, 전국체전용 한국체대 탁구부가 급조되기 시작했다. 100회 전국체전이 서울에서 열리고, 개최도시 서울은 경기도의 18연패를 저지하고 종합우승하는 것이 목표. 점수 1점이 아쉬운 상황(체전의 시도별 순위는 점수로 가린다). 마침 탁구는 고등부와 일반부의 전력은 좋은데, 남녀 대학부는 아예 팀이 없었다. 이에 ‘참가점수’라도 확보하자는 차원에서 한국체대에 급히 탁구부(감독 박재현 교수)를 만들어 대한탁구협회에 등록한 것이다.

# 고등학교 때까지 선수생활은 한 한국체대 재학생은 남자 3명(박준호 김민서 김병진)에, 여자(이가영 정지혜) 2명이 있었다. 단체전은 최소 4명이 있어야 했기에 나머지는 일반학생으로 채워야했다. 공개모집이 나왔고, 의욕만큼은 올림픽메달리스트를 능가하는 양혜림이 지원해 실력이 아닌 성격으로 합격했다. 이렇게 평범한 여대생이 졸지에 '탁구 전국체전 대학부 수도서울의 대표선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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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연습을 하고 있는 양혜림 '선수'. 딱 봐도 폼이 동네탁구다.  


# 탁구에서 전문선수와 동호인의 기량차는 엄청나다. 생활체육 최고수라 해도 전문선수에게는 3점을 받고도 이기기가 어렵다. 지난 3월 주세혁(한국마사회)은 생활체육 최강자로 꼽히는 윤홍균 씨를 11-4로 이긴 바 있다. 4점을 미리 줬으니 한 점도 주지 않고 이긴 것. 이러니 지역 7부 정도의 양혜림 ‘선수’가 전국체전에서 서울시대표로 타 시도의 쟁쟁한 전문선수와 겨루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웃음을 선사하는 이벤트인 셈이다.  

# 양혜림은 뜻하지 않게 다가온 ‘전국체전 출전선수’의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동네 사설탁구장을 빌려 진행되는 주 1~2회 단체연습은 성에 차지 않아 개인돈을 들여서라도 탁구레슨을 받으려고 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추교성 금천구청 감독(서울시탁구협회 부회장)이 ‘그래도 서울대표인데 돈을 주고 배우면 안 된다’며 6월부터 금천구청으로 불러 훈련을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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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청의 추교성 감독(왼쪽)과 양혜림 '선수'.


# 낯선 환경이었지만 맹랑한 양혜림 ‘위탁선수’는 여름방학 등을 이용해 틈만 나면 금천구청 훈련장으로 갔다. 지난 9월 27일 회장기실업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금천구청은 신흥강호. 처음에는 동네탁구 수준도 안 되는 비슷한 또래의 여대생 선수를 보고 실업선수들은 '이건 뭐임?'이라며 경계도 하고, 황당한 실력에 웃음이 나왔지만 그 진정성과 적극성에 이내 따듯하게 품었다. 언니, 동생, 친구가 돼 함께 낮잠을 자고, ‘임시주무’로 금천구청의 지방대회에 동행하기도 했다. 옷도 아예 금천구청 유니폼을 입었다. 탁구계가 손바닥처럼 좁은 까닭에 ‘금천구청이 비장의 카드로 중국선수를 데려왔다’는 엉뚱한 소문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내 정체가 밝혀졌다. 말도 안 되는 전국체전 대표선수라고.  

# 탁구실력? 원래 탁구는 금세 늘지 않는다.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제 고작 지역 5부나 될까? 여전히 동네탁구다. 그리고 이제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 급조된 서울의 대학대표팀 한국체대는 오는 7일 12시 첫 경기로 8강전을 치른다. 개최도시 시드를 받아 16강을 부전승으로 통과해 첫 경기가 8강인 것이다. 양혜림의 한체대가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운동을 그만둔 지 오래된 옛날선수 2명이 1, 2단식에 나가고, 양혜림은 또 다른 일반학생 이지영과 짝을 이뤄 3복식에 나선다. 이 경기가 양혜림의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경기가 될 확률이 높다.

# “목표요? 연습을 몇 번 해봤는데 파트너랑 자꾸 어깨가 부딪혀요. 경기하다가 서로 부딪쳐서 넘어지지 않는 게 우선입니다. 점수요? 상대가 저희를 알아서 그렇게 심하게 다루지 않을 거라고들 해요. 저희는 긴장하지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할 겁니다. 황당한 플레이가 나와도 그저 열심히만 할 겁니다.” 양혜림은 금천구청 탁구단, 탁구를 가르쳐준 초등학교, 중학생 선수들 등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2019년 6개월의 진짜 탁구선수 되기’는 자신의 대학생활에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할 때는 조금 울컥하는 듯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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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무주 대통령기 대회 때 응원 도중, 금천구청의 박헌민(왼쪽), 여지연(이지연)과 찍은 셀카 한 장. 오른쪽 사진은 탁구장에서 잠든 모습을 금천구청 선수들이 놀려주기 위해 찍은 사진.



P.S. 금천구청 탁구단에 물어보니, 양혜림이 탐이 난다며 졸업하면 스카우트 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선수가 아닌 ‘주무(프런트)’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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